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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과 그 메카니즘 | [혼과 그 메카니즘] 6장 일곱 가지 에너지 센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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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이트로즈 작성일15-02-14 23:31 조회4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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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041, Vote: 4, Date: 2005/01/28 17:35:40 , IP: 220.93.126.13
글 제 목 [혼과 그 메카니즘] 6장 일곱 가지 에너지 센터들
작 성 자 문성호



혼과 그 메카니즘: 6장 일곱 가지 에너지 센터들

제6장 일곱 가지 에너지 센터들


동양의 가르침에 따르면 생기체 또는 에텔체는 에테르로 구성되어 있으며, 생명 원리인 뿌라나의 지휘자 역할을 하고, 물질에 활기를 불어넣고, 형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우리는 전장에서 살펴 보았다. 또한 생기체는 혼이라는 자연의 지각 원리를 구체화하는 혼의 표현 매체이다.

혼의 주요 특성은 의식이다. 생명으로써 혼은 “가슴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성적인 영적 의식은 “양미간에 있는 옥좌에 앉아 있다.” 르네 궤농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러므로, 물리적 관점에서 생명 센터에 거주하는 것은 에테르이고, 심령적 관점에서 그것은 ‘살아 있는 혼’이다. 현재 우리는 개별적인 가능성의 영역을 벗어나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무엇보다도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원리적이고 무조건화된 ‘자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정 ‘우주 영혼’ (아뜨마)이고, 실제로 브라마, ‘지고의 지배자’ 그 자체이다. 그래서 이 센터를 브라마-뿌라라고 부르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이렇듯 내면의 인간으로 간주되는 (이와 아울러 이것을 모든 존재 상태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는) 브라마는 뿌루샤라고 불리는데 그 까닭은 그것이 개별성 안에 안식하거나 머무르기 때문이다... 적절하기도 하고 말 그대로 한 마을(뿌리-샤야)이라는 단어 속에서 뿌라pura가 마을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르네 궤농, 인간과 그 생성, pp. 44.45.


생명력은 육체와 접하는 일곱 센터를 갖고 있다.
이들 일곱 생명력 센터는 생명력을 전달하고 혼이 머무는 지점이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실존을 유지하고 그것에 활동을 일으킨다.

드리머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사람의 센터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아의 우빠디upadhi의 핵 속에 각각 반영된다. 생명파라고도 불리는 신성 에너지에 의한 물질의 형성 작용을 연구해 보면, 물질이라는 객관성의 한계 속으로 자아를 투사하여 특정한 성질이 어떻게 물질로 나투어 이른바 따뜨바tattvas로 발전하는 지를 알게 될 것이다. 각각의 따뜨바는 혼을 불어넣은 생명에 대해 탄마뜨라, 또는 신성한 의식의 변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각각의 따뜨바에서 우리는 중심적 생명으로서 신 의식을 지니는 반면, 저항의 관념은 외벽을 형성한다.”

“자아는 현현력에 의해 각각의 계 속에서 자신의 대행자뿐만 아니라 우빠디들의 핵을 일시에 그리고 동시에 형성하는 인공적인 센터들을 발전시키면서 다양한 우빠디들에서 반영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해 왔다.” 드리머, 바가바드 기타 연구, pp. 37, 40, 107.


생명 센터의 인도식 이름은 “차크라”이다. 일곱 가지 에너지 센터의 위치를 (인도식 이름과 함께) 머리에서부터 기저에 이르기까지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머리 센터 -샤하스라라 챠끄라
2. 양미간 센터 -아즈나 챠끄라
3. 목 센터 -비슈따 차끄라
4. 가슴 또는 심장 센터 - 아나하따 챠끄라
5. 태양총 센터 -마니뿌라 챠끄라
6. 천골 또는 성적 센터 -스와디스타나 챠끄라
7. 척추의 기저 센터 -물라다라 챠끄라

횡격막 위에 네 가지 센터들이 있고, 그 아래에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을 독자는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이들 에너지 센터 또는 챠끄라에 대한 글은 많이 쓰여졌고, 그보다 더 많은 내용이 이야기될 수 있지만, 개괄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생명 센터들은 몸의 모든 부분에 뿌라나 에너지를 전하고 세 부분의 신경계, 즉 뇌척추 신경, 교감 신경과 말초 신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에너지 센터들로부터 생기 에너지 또는 뿌라나 에너지는 미세한 지시선을 따라 분포되어 있다. 이 선들은 “나디nadis”라고 불리며, 신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동시에 동맥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들은 육체의 신경계에 기초가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과 그 생성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미세한 형태의 나디 또는 동맥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과 혈액 순환을 일으키는 육체의 동맥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이것들은 오히려 생리학적으로 신경계의 가지에 상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표현상 이들은 빛나는 것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이 어딘가에서 발생해서 열과 빛으로 양극화되면, 미세한 상태는 두 가지의 보충적인 방식들, 즉 열의 성질에 해당하는 혈액에 의해, 그리고 빛의 성질에 해당하는 신경계에 의해 육체 상태와 연결된다. 그러나, 나디와 신경은 단순히 상응하기만 하고,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전자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과, 완전한 개별성 속에서 두 가지 다른 영역을 실제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호흡이 생명 유지에 본질적이고 주요한 생명 활동에 진정으로 관련되기 때문에 나디와 호흡 작용 사이에 어떤 관계가 확인된다 해도, 그것들은 공기가 순환하는 통로의 일종이라는 설명을 결론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이것은 육체적 요소와 미세한 현현에 속하는 적절한 ‘생기 호흡’(뿌라나)을 혼동하게 만들 것이다.

나디의 총 수는 7만 2천개이지만, 다른 문헌에 따르면 7천 2백만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왜냐면 이 수들은 상징적인 것이지 숫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르네 궤농, 사람과 그 생성, pp. 136. 137.


인도 말 로뚜스(lotus: 연꽃)를 챠끄라나 에너지 센터에 관련해 사용하는 라마 쁘라사드는 이런 맥락에서 흥미있는 언급을 하고 있다.

“현대 해부학자들이 말하는 신경총은 이러한 센터들과 일치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으로부터 이 센터들이 혈관으로 구성된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신경과 혈관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양적인 뿌라나와 음적인 뿌라나의 매개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이다. 신경은 양적인 몸의 체계이고, 혈관은 음적인 몸의 체계이다. 신경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상응하는 혈관이 있다. 그들 양자는 모두 구분 없이 나디라고 불린다. 한 쌍은 심장의 연꽃에서 중심을 잡고 있고, 다른 쌍은 천 장의 꽃잎을 이루면서 머리에 중심을 잡고 있다. 혈관계는 신경계의 정확한 그림이고, 사실 그 그림자일 뿐이다. 가슴과 같이 머리에는 그 상위와 하위 부분, 즉 대뇌와 소뇌가 있고 또한 좌우 반구가 있다.” 라마 쁘라사드, 자연의 미세한 힘들, pp. 45-46.


에너지 센터들은 척추와 머리 안에 위치하고 있다. 아더 아발론은 말한다.

“차끄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양 해부학과 중추 신경계와 교감 신경계의 생리학을 설명해야 한다. 둘째, 딴뜨라의 신경계와 차끄라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해부학적이고 생리학적인 면에서 가능하다면, 두 체계의 상호 작용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야 한다. 나머지 것은 일반적으로 탄트라 신비주의에 특이한 것이기 때문이다.

차끄라와 샤하스라라에 대한 딴뜨라 이론은 두개골 속에 들어 있는 뇌나 뇌수를 중추신경계와 척추(메루딴다) 내에 들어 있는 척수와 비교하는... 생리학적 측면에 관심을 두고 있다.

앞으로 다섯 센터들(차끄라)에 대해 설명하겠지만, 척추는 다섯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기저에서부터 차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네 개의 불완전한 척추뼈가 결합하여 미저골coccyx이라는 뼈를 이루고 있는 미저골 영역, 다섯 개의 척추뼈가 결합되어 천골이라는 하나의 뼈를 형성하는 천골 영역, 요추 영역 또는 다섯 개의 척추뼈로 이루어진 요부region of the loins, 12 개의 척추뼈로 이루어진 등dorsal 영역, 또는 등뼈 영역, 그리고 7 개의 척추뼈로 구성되는 경부, 또는 목의 영역. 순차적으로 제시된 것처럼, 척수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서로 다른 특징들을 보인다. 간단히 말해서 이들은 물라다라, 스와디스타나, 마니뿌라, 아나하따, 그리고 비슈따 센터, 또는 차끄라가 조절하는 영역에 상응한다. 이 지역들은 척추 기저, 천골 센터, 태양총 센터, 심장 센터, 목 센터이다,
중추계는 31 개의 척추 신경과 12 개의 두개골 신경을 통해 말초신경계와 연결되어 있고, 이 두 가지는 모두 구심성 신경과 원심성 신경 또는 감각 신경과 운동 신경으로 감각을 일으키거나 행동을 자극한다. 뇌신경 중에는 척추 구(연수)로부터 마지막 6 가지 신경이 올라오고 후각 신경과 시신경을 제외한 다른 6 가지 신경은 연수 바로 앞에 있는 뇌 부분들에서 올라온다. 참고로 요가와 딴뜨라 학파의 저자들은 신경에 대해 나디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또한 의학 서적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쉬라스Shiras를 이용해서 동맥을 설명하지 않고, 이것이 뇌신경을 의미한다고 지적해 왔다. 그렇지만, 요가 나디들은 일반적으로 물질적 신경이 아니라 생기력이 통과하는 더 미세한 지시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척추골 사이의 유공(작은 구멍)에서 빠져나온 척추 신경은 척추의 양쪽에 있는 교감 신경계의 신경절과 교신한다. 척추건spinal cord은 인체의 경우 제 1 경추의 상부 경계에서부터 확장되어 연수 속으로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제 4 뇌실로 들어가 두 번째 요추로 내려가는데, 거기서 그것은 필라멘트 말단filum terminale이라는 지점으로 점차 얇아진다.” 아더 아발론, 뱀의 힘, pp. 123-125.


앞의 인용은 탄트라 체계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최고의 도덕적 자질을 지니고, 생활과 생각이 순수한 사람에게만 안전한, 인도의 에너지 조절 체계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동서양 모두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딴뜨라 수행을 가르치는 이른바 비속화된 수행과 학파들은 지나치게 비난받아도 가혹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 에너지 센터들은 우리가 방금 살펴 본 것처럼 척추와 머리 위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척추의 매질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서 상술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일곱 개의 센터 중에서 두 개는 머리 속에 있고 5 개는 척추 속에 있다. 머리 속에 있는 두 센터들은 정신력과 운동력에 직접적으로 관계하고 있다. 천 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연꽃이라고 불리는 샤하스라라 센터(머리 센터)는 영적 에너지의 구현이며, 의지, 추상적 마음mind 또는 영적 마음, 그리고 직관이라고 설명된다. 아즈나 센터, 또는 미간 센터는 인간이라고 부르는 통합된 유기체, 즉 개성의 하위 마음과 심령적 본성과 관련된다.

척추 안의 다섯 센터들은 사람이 자신의 동물적 본능, 감정적 반응, 그리고 삶의 의도를 드러내는 유기체의 다양한 활동과 관련된다. 그들은 주로 두 가지 머리 센터로 들어가고 그로부터 나오는 에너지의 지휘를 받는다.
뱀의 힘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센터들은 의지적인 운동에 관계되는 근육 결합 조직들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과 아울러 척수 안에서 근접한 센터가 위치해 있는 유관 신경 분포, 배설 등의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대뇌 센터들은 의지, 느낌, 그리고 감정의 현현과 관계될 때에만 이 기능들을 조절한다고 지적되고 있다. 반면 부교감 신경계와 관련된 센터들은 지속적인 유기체의 실존에 본질적인 다양한 자극 조건과 일치하는 무의식적인 적응 메카니즘을 구성한다고 하며, 연수는 또한 상위 센터들과 말초 신경 사이의 통신 경로이자 신경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들을 조절하는 독립적인 센터이다. 머리에서 척추까지 내려오는 운동 자극을 전달하는 신경 섬유들이 척추구(연수)를 통과해 경로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교차된다는 것을 주의해야 하는데, 이것은 묵따 뜨리베니의 설명을 보면 딴뜨라에서 언급되어 왔던 사실이다. 후자는 수많은 구심성 신경관과 원심성 신경관에 의해 소뇌와 대뇌의 신경절과 연결되어 있다. 소뇌 위에 대뇌가 있는데, 이는 대개 의식적인 의지와 관념 작용과 수의voluntary 운동이 일어나는 것과 관련되는 활동을 한다. 그러나 내관적인introspctive 심리학의 주관적 물질인 의식이라는 개념은 심리학적 작용 개념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단순히 ‘의식’이 하나의 유기적 포착conception이 아니고 의식이 내관적인 면을 나타내는 에너지의 생리학적 이해와 전혀 관련되지 않기 때문에 의식에는 어떤 기관도 없다. 내면의 의식은 아뜨마이다. 마음과 몸은 둘 다 의식의 불완전하거나 베일을 쓴(veiled: 가려진) 표현들로 몸의 경우 너무나 가려져 있어서 무의식의 모습을 갖고 있다. 살아 있는 뇌는 뿌라나에 의해 주입된 감지할 수 있는 거친 물질(마하부따)로 구성되어 있다. 그 물질은 마음(안따까라나)의 형상 속에서 의식이 표현하기에 적합한 매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집성(集成)되어 있다. 의식은 몸의 속성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단순히 몸의 작용도 아니다. 정신적 의식이 뇌의 장애에 영향을 받거나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은 그런 의식의 표현에 대해 후자의 필요성을 증명하고, 의식이 뇌 속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거나 그것이 같은 것의 속성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척추의 양쪽에는 교감 신경관 (이다와 핑갈라)라는 신경 섬유와 연결된 일련의 신경절이 있는데, 두개골의 기저로부터 미저골까지 쭉 확장되어 있다. 이것은 척수와 소통하고 있다. 비록 경부 영역에서 대부분 사라진다 해도, 대단히 규칙적으로 각 척추 신경에 상응하는 신경절의 각 마디가 흉관 영역과 요추 영역에 있다는 것과 신경 구조의 매우 큰 다발들은 심장, 위, 그리고 폐, 즉 각각 아나하타, 마니뿌라, 그리고 비슈따에 의해 조절되는 영역들, 즉 이하에서 설명되는 다섯 차끄라 중 위쪽의 세 차크라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양쪽의 교감신경의 연쇄로부터 신경 섬유들은 복부와 흉곽의 장기로 이어진다. 이로부터 또한 신경들이 방출되어 척추 신경으로 되돌아 가고, 다른 신경들은 몇몇 뇌신경들 속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들은 사지, 몸통, 다른 부분들로 분산되어 척추 신경 또는 뇌신경으로 이어진다. 교감 신경들은 주로 다양한 조직의 소동맥의 근막과 내장의 근 조직을 조절하는 자극을 전달한다. 혈관의 색조가 연수에 있는 혈관 운동 센터의 활동에 의해 유지되는 것은 교감신경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교감 신경은 중추신경계로부터 확산되는 자극을 유도한다. 이들은 교감 신경 자체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척추 신경의 앞쪽 뿌리에 의해 척추로부터 자극이 나와 짧은 가지들을 거쳐서 교감 신경의 연쇄로 들어간다. 교감신경계는 순환, 소화, 그리고 호흡을 조절하고 그에 영향을 미친다.

중추 신경계의 해부학적 배열은 매우 복잡하고 한편 섬유, 세포 그리고 원(原) 섬유의 엉킴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아직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중추 신경계의 생리학을 설명할 때, 신경계의 한 부분과 또 다른 부분 사이에서 자극이 통과할 수 있는 경로를 추적하는 것과 해부학적 연관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갖고 그 부분들이 서로 그리고 몸의 나머지와 형성하는 생리학적 관련성을 추측하는 것 이외에는 현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특별한 메카니즘, 즉 감각, 분지, 또는 운동, 그리고 이른바 비뇨생식기 센터와 같은 그 센터들과 특별히 관련되는 중추신경계 내의 신경 센터들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주어진 생리학적 행위는 척추의 특정 부분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기에 차끄라라고 불리는 마야 샥띠(Maya Shakti)의 표현들과 같은 센터들의 미세한 국면이다. 이들은 차례로 물라다라, 스와디스타나, 마니뿌라, 아나하따, 그리고 비슈따 차끄라들과 궁극적으로 관련있는 생식, 배뇨, 소화, 심장 활동, 그리고 호흡의 거친 기관들과 간접적인 조절 기관들을 통해 관계되고 있다. 이것은 여러 가지 관tracts이 배타적이지 않고, 다양한 지각, 의지, 그리고 관념화 과정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 아더 아발론, 뱀의 힘, pp. 126-129.


이 센터들은 개인의 진화 상태에 따라 활동성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어떤 센터들이 “깨어 있고” 다른 사람은 똑같은 센터들이 상대적으로 잠자고 있을 수 있다. 어떤 유형은 태양총 센터가, 다른 유형은 심장이, 또한 다른 유형은 목이 활동적이거나 잠든 상태일 것이다. 머리 센터가 활동적인 경우는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미개한 사람들과 진화가 많이 되지 않은 경우에는 횡경막 아래의 세 가지 센터들, 즉 척추의 기저 센터, 천골 센터, 태양총 센터들이 살아 있고, 지배적이지만, 횡경막 위의 센터들은 “잠자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목 센터에서 느낌을 받지만, 머리와 가슴 센터들은 여전히 잠자고 있다. 진화가 많이 이루어진 사람들, 종족의 지도자, 직관적인 철학자와 과학자, 그리고 위대한 성자들은 머리와 가슴 센터가 파동, 즉 감정적 정신적 의식의 유형과 성질에 의해 머리와 가슴에서 중요한 느낌을 받고 있다.

사람의 발전에 따라서 이 에너지 센터들은 살아나고 현저하게 되고, 그 생생함에 따라 다양한 활동이 나타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횡경막 아래의 센터들은 사람과 동물 양쪽에서 모두 발견되는 물질적 형태의 육체적 삶과 동물 혼적인 삶을 지배한다. 횡경막 위의 센터들은 지성적이고 영적인 삶에 관여하면서, 자신의 상태가 동물의 삶과는 달리 더 높은 진화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활동들을 하게 한다.

요약한 내용은 7 가지 에너지 센터 또는 차크라에 대한 동양의 가르침이다.

서양의 분비선 이론과 동양의 일곱 가지 센터 이론을 비교하면, 우선 그 위치에서 현저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일곱 가지 에너지 센터들은 분비선이 위치하는 동일한 곳에서 발견되고, 에너지 센터들 각각은 상응하는 분비선에 대한 힘의 근원이고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도의 가르침에 따르면 확실한 사실이다) 다음의 비교표는 이 위치가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센터들 분비선

머리 센터 송과선
양미간 뇌하수체
목 센터 갑상선
심장 센터 흉선
태양총 센터 췌장
천골 센터 생식선
척추 기저 센터 부신



첫 번째 사실보다 훨씬 더 현저한 두 번째 것은 깨어 있는 에너지 센터들이 분비선으로 확인된다는 것이다. 그 작용은 이미 알려져 있고, 대부분의 분비물 또는 호르몬이 여기서 발견된다. 인류 중에서 선진적인 사람들의 잠자거나 깨어 있는 센터들은 그 기능이 상대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분비선에 따르는데, 그 분비물은 대개 추출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뇌하수체나 흉선 둘 중 하나 안에 있는 송과선의 분비물은 부신 수질의 분비물과 같이 미확인으로 분류되어 있다고 버먼 박사는 언급하고 있다. 이것들은 잠자거나 깨어있는 심장 센터, 목 센터, 머리 센터, 그리고 척추 기저 센터에도 해당한다.

이것은 흥미있는 일치일까? 또는 각각의 경우에 발견되지 않은 호르몬이 있는 분비선들이 일반인들의 경우 자고 있는, 아직 각성이 일어나지 않은 센터에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인가?

여러 가지 분비선은 이 센터들의 에너지를 통해 존재하게 된다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의 경우 각성되서 작용하는 센터들이 분비선들과 연결되어, 그 특이한 분비와 이미 알고 있는 혈류와 관계된 작용이 격리된 반면, 아직 잠자며 개발되지 않은 센터들은 그 분비가 부분적으로만 알려졌거나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분비선들과 결합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쨌든 고려할 가치가 있다.

사람은 분비선이 만들어낸 것이며 인간은 특이한 분비계 자체라고 서양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것은 결국 정당하다. 그러나 그 이유는 에너지 센터들에 대한 동양적 이론의 정당함에 있을 수도 있다. 분비선과 기능 항진super-activity 또는 기능 저하의 조건, 그리고 정오(正誤)의 기능은 이러한 센터들의 상태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이러한 분비선들은 훨씬 더 크고 더 복잡한 체계의 외부적 상징, 가시적인 것, 물질적 국면일 뿐이다. 그것들을 통해 작용하는 혼 생명의 성질, 그리고 모든 것을 조절하고 지배하는 혼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이러한 센터들의 상태는 그를 통해 진동하는 혼 에너지의 형태와 성질에 의존한다. 미개발된 사람의 경우에 그것은 활동하고 나타나는 생명 에너지, 뿌라나일뿐이다. 이것은 동물에게 생명을 주고 하위 센터들(척추 기저 센터와 천골 센터)에 활동성을 준다. 사람이 발전하면 의식, 즉 혼 국면이 점차 그 현존을 느끼게 만들고, 태양총 센터를 활동하게 만든다. 이 센터는 사람과 동물에서 하위의 심령 감각적 삶의 자리이고, 본능적인 뇌라고도 불린다. 바가반 다스는 이렇게 가르친다.

“산스끄리뜨 문헌에서 배꼽이 심장보다 유기체에 더 중심적이고, 더 본질적인 것이라고 다루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심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지적해도 부족함이 없고, 그것은 진실이지만, 생리학적으로 ‘배꼽’은 진화의 초기 단계에 보다 더 중요한 기관이었으며, 현 단계에서도 욕망 작용과 관련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가슴보다도 더 적절하게 욕망과 본질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바가반 다스, 성스러운 말씀의 과학, I권, p. 82, 각주


그는 다음 문단에서 베산트 여사도 인용하고 있다.

“‘배꼽’은 태양총을 나타내는데, 아마 교감 신경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경총일 것이다. 그것은 식도와 생식기와 함께 소화관을 조절하고, 간장, 비장, 위로 신경 가지가 이어진다. 그것은 또한 폐와 심장으로도 이어져 있다. 그것은 교감 신경계의 뇌로 간주될 수 있으며, 생각에 위험한 이완에 반응하며, 이에 대한 무분별한 집중은 불치의 신경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것이 흥분하여 감정이 폭발하기도 하고, 감정적인 충격에 따르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바가반 다스, 성스러운 말씀의 과학, I 권. p. 83


오늘날 사람은 대부분 이 세 가지 센터들을 통해 작용한다. 몸의 에너지들은 생식선을 통해 성적 생활에 만족을 주고 이를 자극하는 작용을 하며, 전투의 분비선이자 투쟁의 분비선인 부신을 통해 싸우고 진화하려는 충동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태양총을 통해 마음의 본능적 삶을 다스린다. 그래서 개인이 발동되면 의식적 감각적 인간으로 된다. 진화가 진전되면, 자아 또는 혼이 사람 속에서, 그의 육체적 실존에서, 점점 더 활동적이고 지배적이 되고, 조금씩 조금씩 에테르 구조의 모든 부분들이 생기있게 깨어나게 된다. 점차 상위 센터들은 활동성이 증가하게 되며, 몸을 통해 쏟아지는 힘의 강조점이 횡경막 위의 센터들로 이동한다. 목 센터가 깨어나면 창조적인 작업의 기관으로 된다. 심장 센터는 활기있게 되고, 사람은 자신의 혼적 관계, 자기 집단의 책임과 생명 혼의 포괄성을 의식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머리 센터들이 깨어나 또 다른 범위의 지각들이 그의 의식으로 들어온다. 그는 혼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게 되고, 개성으로서 통합되고, 그 뒤에도 영혼의 세계, 신적인 세계, 그리고 영혼들의 보이지 않는 세계, 그리고 혼 생활을 실재로 증명하는 “수많은 증거”를 인식하게 된다.

인간 진화의 목적들 중에는 이것을 성취하는 것이 들어 있다. 척추 기저 센터와 심장 센터는 완전히 기능하는 활동 상태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물질 그 자체에 내재하고 척추 기저 센터에 내장된 에너지와, 가슴에 자리잡은 혼의 에너지와 머리에 집중된 영혼의 에너지의 혼합을 통해 인간은 완성의 최고점에 이르게 된다. 에너지의 이러한 융합을 통해 그는 몸이 진정 혼을 위한 매체이고, 그 혼은 진정 의지의 표현이자 영혼의 목적이 되도록 신의 적극적 표현, 즉 영혼, 혼, 몸이 된다.

지상에 살았을 때 그리스도는 무엇이라 말씀했는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XIV: 9) 그는 또한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들을 할 것이고; 이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 아버지에게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는 영혼인 아버지를 드러내며 몸에 육화된 혼이었고, 몸의 메카니즘을 통해 혼의 권능을 증명하였는데, 이것은 센터들의 각성에 따르는 것이라고 인도인들은 주장한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아니마... 모든 몸에 스며들어 죽은 자에게 생명을 가져다 주는 권능.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게 방으로 들어 올 수 있었고, 죽은 자를 일으킬 수 있었다. (누가 24: 36, 마가 16: 14, 요한 20: 19, 요한 11.).

2. 마히마... 자신을 포함하거나 확대시키거나 또는 우주를 포괄하는 권능. (마테 12:25, 요한 2: 24, 요한 6:64.)

3. 라기마... 공중 부양을 하거나 물 위를 걸을 수 있도록 자신을 빛으로 만드는 권능. 그리스도는 물 위를 걸었다. (마테 12: 25, 요한 2: 24, 요한 6: 64.)

4. 가리마... 자신을 무겁게 만드는 권능. 기독교 성경에는 그리스도가 이 권능을 수행한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5. 쁘랍띠... 사건들을 예언했고 (그리스도는 자신의 십자가 처형을 예언했다. 마테 26: 2, 누가 24: 7) 질병을 고치는 권능 (그리스도는 수 백명을 고쳤다, 마테 12: 15, 14: 15), 그리고 투시력과 투청력. (그리스도는 투시력, 요한 1: 48, 그리고 투청력, 요한 12: 29.)를 보였다.

6. 쁘라까메가... 몸을 보존하는 권능. 그리스도는 사후에 제자들 앞에 그들이 알고 있던 동일한 몸으로 분명히 다시 나타났다. (요한 20:20-27)

7. 비시뜨반... 자기 조절의 권능, 동물과 사람들을 조절하는 권능. 마귀 들린 사람들의 조절과 경사진 곳으로 달려 내려가 바다에 빠진 돼지들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마테 8, 마가 5, 마가 9) 그리스도는 이 모든 것을 증명했다.

8. 이샤뜨반... 일반 주권의 권능. 이것은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에게 주장되었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권능들의 소유와 우리가 더 큰 것도 할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예언 성취는 서양인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반하는가? 라디오의 경우 음파가 방송되고 조절되고 증폭되지만, 무엇보다도 본래의 미세한 형태로 흘러들어 오는 음파를 수신기는 보강한다. 사람은 기계적인 보강 장치를 만들어 문제 없이 미묘한 음파를 수신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바로 투청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생각의 전달은 (대단히 회의적인 사람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종류의 방송과 다른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다른 “기적들”과 함께 물질 세계는 더 미세한 에너지와 힘에 의해 조절되고 더 미세한 장에서 적기에 작동하는 법을 배우면 간단히 물리적인 것과 물질에 대한 지배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혼과 영혼의 발달을 통해, 모든 센터들의 깨어남을 통해 사람은 자신의 완성과 영광에 다가간다는 것이 인도의 오래 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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